사랑이란
삶을 선물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이별은 사랑의 죽음을 뜻한다.
봄(처음) 여름(둘째) 가을(광복절) 겨울(이별)
누가 찼나가 중요한가.
누군가가 결별을 선언하고 결별을 선언하거나 결별을 듣는사람도... 버리는 사람도 충분히 당황하고 있다.
몸에는 그만큼의 스트레스가 있다.
사랑의 종말을 감당해 내면 배짱이
나를 버리고 간사람을 감사한다.
인생의 행운을 맛보게 된다.
알아서 파국에 이른다.
어떻게 변하하는 건지 찾아보자
====================================================================
그녀와 이별을 하였다.
뭐든지 새롭고 낯설은 것들. 이별 ㅋㅋ 모쏠이었던 내겐 참 모든 것이 연구감이었다.
43일의 연애 끝에 이별을 하게 되었다. 기승전결이 나름 있다. 생로병사. 처음 만난날 고백을 하였고
그날 붙어 불이 붙었으며 광복절쯤 시들어졌다. 그리고 내 생일 이틀전 이별을 청했다.
사랑이란 삶을 선물 받는 것이다. 43일 동안 나는 그녀에게 삶을 선물받았다.
그녀가 말했듯이 생로병사가 있었고
그녀는 나를 찼지만 그녀가 결별을 선언한건 그녀도 그녀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의 종말을 경험한 지금 이제 좀 배짱이 생긴다.
나를 버리고 간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생의 행운을 맛볼것이며 그녀는 알아서 파국에 이를 것이다.
미래에 새로운 사랑을 경험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를 통해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남이 나에게 어떠한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충격을 줘야한다는 유치한 정당성을 갖고있던 내 모습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그녀의 행동 덕분에.
자기가 데이트비용을 거의다 지불을 하며 나와 만났을 때의 소비할 돈 만큼은 다른 사람을 만날때 쓰길
바란다는 말 난 아직도 그말을 잊지 못한다. 21살의 입에서 나올말인가.
그녀를 통해 다른 이성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24년 평생 이성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한번쯤은 끌어보고 싶다. 뭐 그런 느낌을 많이 가졌지만 뜻하는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어쨌는 나는 사랑을 받았고, 나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녀를 통해 나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었고, 나의 최선을 다하였다. 아니 어쩌면 노력은 부족했는지도 몰라.
지금 이 모습을 그대로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녀만 괜찮다면 끝까지 사랑하리라... 하던말을
지켰다.
그녀는 21살에 직장인이었으며, 주말엔 학교를 다니던 사람이었다.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를 하였으며,
특성화고를 나온 그녀는 많은 지식보다는 생활속에서 얻은 지혜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당찬 고집이 있었으며, 그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은 거의다 옳은 말이며 당위적인 것
이었다. 하지만 가끔 그 안에서 아닌 것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어쩌면 그 아닌게 우리의 이별을 독촉하지
않았나 싶었다.
추석이다. 프로젝트가 많고 과제에 이리저리 치인 그녀, 나에게 오늘 이별통보를 한다. 나를 챙겨주지
못할 것 같고, 이렇게 된다면 서로 힘들어 질 것이라며,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 난 그녀에게 매달렸다.
어쩌면 매달리는 시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 사랑하고 너 사랑하는데 무엇이 문제일까라며
어쩌면 그녀는 그 전 남자친구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허무하게 연락하는 사이가 되는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를 이젠 별로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래서 남자는
능력이란 말을 자주하는걸까? 뭔가 아쉬운걸 남겨야 남는다는 심보 그런식으로 사랑을 일반화 내리고
싶지는 않다.
여하튼 나는 계속 설득하였고, 그녀는 왜 나만 생각하냐며 나무랐다. 그녀는 마치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게
우리 사이의 해답이며, 자기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세 확률이 높다한들 고집은 고집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에게 남들 이별할때 하는 말 그런말을 하고 차단을하고 카톡방을 나가고 스팸을
처리하였다.
뭔가 자기의 뜻이 확고했던 그 순간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옳든 틀리든 그녀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틀렸다는걸 내심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잘한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략 3시간의 고민 글고 충격을 잊으려는 잠... 그 끝에 내린 결말이었으며, 그녀의 고집을 지켜주
고 싶어 이별문자를 발송한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아주 쥐털
만큼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생각이나 연락을 한다 하여도 나는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지금도 무진장 그립고 보고싶지만, 난 그녀의 고집을 지켜주고 싶다. 그게 맞든 틀리든 날 다시
그리워하든 아니 옳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랑을 시작하든 난 충분히 즐거웠고, 행복했고, 사랑했다.
비록 나는 차였지만, 배신감은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절대로 더 이상 연락할일 없다.
연락이 오면 당차게 씹을 것이다.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도 똑같이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그 결정 끝까지 난 지켜주고 싶다.
그럴 각오 없이는 하지 말아야했다 생각한다. 각오가 없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느끼는게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연장자로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숨김없는 웃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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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삶을 선물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
이별은 사랑의 죽음을 뜻한다.
봄(처음) 여름(둘째) 가을(광복절) 겨울(이별)
누가 찼나가 중요한가.
누군가가 결별을 선언하고 결별을 선언하거나 결별을 듣는사람도... 버리는 사람도 충분히 당황하고 있다.
몸에는 그만큼의 스트레스가 있다.
사랑의 종말을 감당해 내면 배짱이
나를 버리고 간사람을 감사한다.
인생의 행운을 맛보게 된다.
알아서 파국에 이른다.
어떻게 변하하는 건지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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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이별을 하였다.
뭐든지 새롭고 낯설은 것들. 이별 ㅋㅋ 모쏠이었던 내겐 참 모든 것이 연구감이었다.
43일의 연애 끝에 이별을 하게 되었다. 기승전결이 나름 있다. 생로병사. 처음 만난날 고백을 하였고
그날 붙어 불이 붙었으며 광복절쯤 시들어졌다. 그리고 내 생일 이틀전 이별을 청했다.
사랑이란 삶을 선물 받는 것이다. 43일 동안 나는 그녀에게 삶을 선물받았다.
그녀가 말했듯이 생로병사가 있었고
그녀는 나를 찼지만 그녀가 결별을 선언한건 그녀도 그녀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의 종말을 경험한 지금 이제 좀 배짱이 생긴다.
나를 버리고 간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인생의 행운을 맛볼것이며 그녀는 알아서 파국에 이를 것이다.
미래에 새로운 사랑을 경험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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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통해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남이 나에게 어떠한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동일한
충격을 줘야한다는 유치한 정당성을 갖고있던 내 모습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그녀의 행동 덕분에.
자기가 데이트비용을 거의다 지불을 하며 나와 만났을 때의 소비할 돈 만큼은 다른 사람을 만날때 쓰길
바란다는 말 난 아직도 그말을 잊지 못한다. 21살의 입에서 나올말인가.
그녀를 통해 다른 이성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껏 24년 평생 이성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한번쯤은 끌어보고 싶다. 뭐 그런 느낌을 많이 가졌지만 뜻하는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어쨌는 나는 사랑을 받았고, 나도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녀를 통해 나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었고, 나의 최선을 다하였다. 아니 어쩌면 노력은 부족했는지도 몰라.
지금 이 모습을 그대로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녀만 괜찮다면 끝까지 사랑하리라... 하던말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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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1살에 직장인이었으며, 주말엔 학교를 다니던 사람이었다. 열심히 일하면서 공부를 하였으며,
특성화고를 나온 그녀는 많은 지식보다는 생활속에서 얻은 지혜로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당찬 고집이 있었으며, 그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은 거의다 옳은 말이며 당위적인 것
이었다. 하지만 가끔 그 안에서 아닌 것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 어쩌면 그 아닌게 우리의 이별을 독촉하지
않았나 싶었다.
추석이다. 프로젝트가 많고 과제에 이리저리 치인 그녀, 나에게 오늘 이별통보를 한다. 나를 챙겨주지
못할 것 같고, 이렇게 된다면 서로 힘들어 질 것이라며,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 난 그녀에게 매달렸다.
어쩌면 매달리는 시늉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 사랑하고 너 사랑하는데 무엇이 문제일까라며
어쩌면 그녀는 그 전 남자친구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그런 허무하게 연락하는 사이가 되는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를 이젠 별로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이것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래서 남자는
능력이란 말을 자주하는걸까? 뭔가 아쉬운걸 남겨야 남는다는 심보 그런식으로 사랑을 일반화 내리고
싶지는 않다.
여하튼 나는 계속 설득하였고, 그녀는 왜 나만 생각하냐며 나무랐다. 그녀는 마치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게
우리 사이의 해답이며, 자기말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글세 확률이 높다한들 고집은 고집이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에게 남들 이별할때 하는 말 그런말을 하고 차단을하고 카톡방을 나가고 스팸을
처리하였다.
뭔가 자기의 뜻이 확고했던 그 순간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옳든 틀리든 그녀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틀렸다는걸 내심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잘한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대략 3시간의 고민 글고 충격을 잊으려는 잠... 그 끝에 내린 결말이었으며, 그녀의 고집을 지켜주
고 싶어 이별문자를 발송한 후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아주 쥐털
만큼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생각이나 연락을 한다 하여도 나는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이 싸우고
있는 지금도 무진장 그립고 보고싶지만, 난 그녀의 고집을 지켜주고 싶다. 그게 맞든 틀리든 날 다시
그리워하든 아니 옳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랑을 시작하든 난 충분히 즐거웠고, 행복했고, 사랑했다.
비록 나는 차였지만, 배신감은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절대로 더 이상 연락할일 없다.
연락이 오면 당차게 씹을 것이다.
이별을 통보하는 사람도 똑같이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선택한 그 결정 끝까지 난 지켜주고 싶다.
그럴 각오 없이는 하지 말아야했다 생각한다. 각오가 없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느끼는게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연장자로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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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숨김없는 웃음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