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 회사도 6일 정도가 지나면 7년차가 되어간다. 회사원은 3,6,9 이렇게 위기가 찾아온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6년차 사춘기가 온 것 같다. 한국에서 멀어지다 보니 분명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역으로 일본에서 살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언제부터 인가 아니 나는 솔직히 처음부터 였던 것 같다. 한국의 단점이 싫어서 일본을 선택했는데 이제는 일본의 단점들이 보여 한국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근데 다시 한국의 단점들을 상기하게 되면 그냥 일본에 남아야겠다는, 그런 끊임없는 무한 반복의 변덕이 죽을 끓는 순간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 그래서 내 두 눈으로 밖에 세상을 볼 수 없고, 상대를 의식하고 배려한다 하더라도, 가슴한켠 에는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국을 벗어나니 좋았던 것은 기업 문화였다. 많이 챙겨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나 또한 그렇게 끌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특히 준 임원급 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빈말이라도 내 의견을 지지해주고 같이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해주는 것들은 정말이지 너무 고마웠다. 한국에 있을때는 나이만 쳐먹고 위에 앉은 저 새끼는 도대체 왜 저 자리에 앉아서 똥 군기를 잡을까? 싶었던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이곳은 지위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그만한 책임과 성과가 반영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뭐 이런거나 장남 장손인 내가 슬슬 집안의 무거운 책임을 짊어 지게 할 때쯔음 한국을 벗어나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조부모는 당황했지만 어지간히 말릴 재간이 없었다. 간다면 그냥 가는거였고, 빚진 돈 받아내려는 채권자 마냥 손주 며느리와 증손주를 만들어야하는 부담은 해외로 나가게된 덕분에 그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김제동이 어머니에게 결혼하지 못한게 미안하긴 하지만, 20대가 지났으니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라는 말은 내 생각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뭐 대충 이런 두 가지의 굵은 줄기로 ,승차감 하차감과 비슷하게 일본에 입국해보니, 조선을 탈출하다보니 이런 것들이 나에겐 나름 만족한 것들이었다. 일을 할때 분명 힘든 일이 많았다. 혼자 삭혀야하는 것들도 많았고, 눈치보는 것도 많았고, 그래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근데 올해는 유독 꽤나 많은 부담을 느꼈고,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형과 상담을 했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말은 여기 사람들은 일본에 쭉 살 사람이고 너는 아니지 않냐, 한국에 와서 결혼할 사람도 찾고 직원 추천으로 넣어줄테니 와서 같이 일을 하자라는 제안, 국내 내노라하는 기업에 다시 자리를 잡고 직접 일본에 와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형. 확실히 여러가지로 지금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내년부터 부양가족으로 넣으려면 송금 가격도 올라가고, 관리비,수도세, 전기비포함 월 7만5천원이면 떡을 치던 1인실 기숙사도 내년12월 까지면 나와야하는 상황이고. 앞서 적은 대로 뭐 인연의 끈은 놓지 않고 있지만 아직 까지는 결혼상대도 없고, 매 주말이 시골 촌 구석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자면 여기서 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한다. 차라리 한국에 가면 도시라 이러고는 안있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뭐 대충 이런 생각으로 이직의 가닥을 잡고있다. 무조건 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회사에 자리가 나면 도전할 생각이다. 어쨌든 자소서를 가다듬고 있는 중인데, 오늘 회사에 출근을 하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맞닥 드려야 할 부모님의 부채; 이건 뭐 솔직히 자식된 도리로서 어느정도 도움을 드릴 생각은 있다. 허나; 장남 장손 크리티컬 대미지가 생각보다 쌜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그래서 뭐 탈락 되면 안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랄까. 사촌동생이 아이가 생긴 이상 날 더 짖누를것이며 계속 눈치를 줄것이다. 아니 한국에 있었다면 진작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집에 대한 생각도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가게되면 주식도 좀 익절구간에서 팔아야겠지. 결론; 한국살때는 저게 싫어서 일본으로 왔는데, 일본오니 이제는 저게싫다한국으로 좋은 조건으로 못 돌아갈경우 한국엔 저게 싫었으니 차라리 잘됬다하며 자기위로를 하자.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다. 그래서 내 두 눈으로 밖에 세상을 볼 수 없고, 상대를 의식하고 배려한다 하더라도, 가슴한켠 에는 자기의 이익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한국을 벗어나니 좋았던 것은 기업 문화였다. 많이 챙겨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고, 나 또한 그렇게 끌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특히 준 임원급 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빈말이라도 내 의견을 지지해주고 같이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해주는 것들은 정말이지 너무 고마웠다. 한국에 있을때는 나이만 쳐먹고 위에 앉은 저 새끼는 도대체 왜 저 자리에 앉아서 똥 군기를 잡을까? 싶었던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이곳은 지위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그만한 책임과 성과가 반영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뭐 이런거나 장남 장손인 내가 슬슬 집안의 무거운 책임을 짊어 지게 할 때쯔음 한국을 벗어나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조부모는 당황했지만 어지간히 말릴 재간이 없었다. 간다면 그냥 가는거였고, 빚진 돈 받아내려는 채권자 마냥 손주 며느리와 증손주를 만들어야하는 부담은 해외로 나가게된 덕분에 그 부담과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김제동이 어머니에게 결혼하지 못한게 미안하긴 하지만, 20대가 지났으니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라는 말은 내 생각에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뭐 대충 이런 두 가지의 굵은 줄기로 ,승차감 하차감과 비슷하게 일본에 입국해보니, 조선을 탈출하다보니 이런 것들이 나에겐 나름 만족한 것들이었다. 일을 할때 분명 힘든 일이 많았다. 혼자 삭혀야하는 것들도 많았고, 눈치보는 것도 많았고, 그래도 어찌어찌 지나갔다. 근데 올해는 유독 꽤나 많은 부담을 느꼈고,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형과 상담을 했다. 가장 마음을 울렸던 말은 여기 사람들은 일본에 쭉 살 사람이고 너는 아니지 않냐, 한국에 와서 결혼할 사람도 찾고 직원 추천으로 넣어줄테니 와서 같이 일을 하자라는 제안, 국내 내노라하는 기업에 다시 자리를 잡고 직접 일본에 와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형.
확실히 여러가지로 지금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내년부터 부양가족으로 넣으려면 송금 가격도 올라가고, 관리비,수도세, 전기비포함 월 7만5천원이면 떡을 치던 1인실 기숙사도 내년12월 까지면 나와야하는 상황이고. 앞서 적은 대로 뭐 인연의 끈은 놓지 않고 있지만 아직 까지는 결혼상대도 없고, 매 주말이 시골 촌 구석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자면 여기서 뭐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기는 한다. 차라리 한국에 가면 도시라 이러고는 안있겠지 하는 마음도 있다.
뭐 대충 이런 생각으로 이직의 가닥을 잡고있다. 무조건 간다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회사에 자리가 나면 도전할 생각이다. 어쨌든 자소서를 가다듬고 있는 중인데, 오늘 회사에 출근을 하니 한국으로 돌아가면 맞닥 드려야 할 부모님의 부채; 이건 뭐 솔직히 자식된 도리로서 어느정도 도움을 드릴 생각은 있다. 허나; 장남 장손 크리티컬 대미지가 생각보다 쌜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 그래서 뭐 탈락 되면 안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랄까. 사촌동생이 아이가 생긴 이상 날 더 짖누를것이며 계속 눈치를 줄것이다. 아니 한국에 있었다면 진작에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집에 대한 생각도 하기는 해야 할 것이다. 가게되면 주식도 좀 익절구간에서 팔아야겠지.
결론; 한국살때는 저게 싫어서 일본으로 왔는데, 일본오니 이제는 저게싫다한국으로 좋은 조건으로 못 돌아갈경우 한국엔 저게 싫었으니 차라리 잘됬다하며 자기위로를 하자.